교회

절제의 항목을 새롭게 하자

끄적이며 걷다 2025. 8. 18. 22:31

 

 

한 교회에 일부 청년들이 함께 모여 술을 마신 사진을 SNS에 올렸다.

 

그리고 우연히 이를 보게 된 한 청년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담배

 

끊임없이 논쟁의 식탁에 오르는 메뉴다.

 

한국교회는 왜 유독 금주금연을 강조할까?

 

아마도 한국교회 초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에 따른 담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일지 싶다.

 

 

* 금주가(禁酒歌) / 임배세 작사(1931, 감리교 신정찬송가)

 

1.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 마라 /
    건강지력 손상하니 천치 될가 늘 두렵다

2. 패가 망신 될 독주는 빗도 내어 마시면서 /
    자녀교육 위하여는 일전 한 푼 안 쓰려네

3. 전국 술값 다 합하여 곳곳마다 학교 세워 /
    자녀수양 늘 식히면 동서문명 잘 빗내리

4. 천부주신 네 제능과 부모님게 받은 귀체 /
    술의 독기 빗지 말고 국가 위해 일할 지라

<후렴>

아 마시지 마라 그 술, 아 보지도 마라 그 술 /
우리나라 복 받기는 금주함에 잇나니라.

 

 

* 그리스도 신문 189757일 자 중

 

“담배 먹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불편한 거시 만흐니라.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병이 잇나니 힘줄이 약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념동이 더 벌덕 벌덕하고, 슈전증이 나고, 안력에 대단히 해롭고, 여러 가지 병이 만흐니라.”

 

(참고 : 이상규의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 25, 국민일보)

 

 

찬송가 가사와 신문 기사를 보게 되면 당시 패가망신할 정도로 술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흡연 역시 건강에 해악이 된다는 내용이 골자다. 절제가 요구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정황이었다. 물론, 신앙을 전파하는데에도 유익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질문해보자.

 

한국 사회는 여전히 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자들이 많은가? 자녀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할 정도로 술에 탐닉하는가? 술에 대한 소비가 지나쳐 사회발전을 저해할 정도인가?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은 여전히 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술에 관한 문화에 있어 사회적으로 의식이 성숙해졌다. 

 

담배는 이제 비싸서 피기도 힘들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술과 담배는 100년 전에 비하며 절제의 항목에서 하위에 해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늘날에 절제의 항목에 새롭게 올라야 할 것이 무엇일까.

 

100년 전과 비교하여 역설적으로 과도한 교육열, 수양의 기능이 사라지고 경쟁의 요람이 된 교육기관, 

 

재능의 차원에서 조장되는 과식문화(먹방), 진영논리안에서 상대를 향한 지나친 비하와 경시...

 

 

100년이나 지났다. 

 

너무 '술'과 '담배'에만 집착하지 말고 시대를 성찰하여 한국사회와 교회의 성숙을 저해하는 또 다른 '절제'의 항목들로 업데이트하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