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편안함에 근거한 헌신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가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경험함에 따라 차츰 편안함을 느끼고, 좀 더 깊이 헌신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교회에 진입하는 과정을 수월하게 만들고, 깊이 참여할수록 더 많은 유익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마크 데버, 매력적인 공동체)
교회는 성도가 공동체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초기에는 불편해하거나 부담을 갖지 않게 하는데 초점을 둔다. 최대한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돕는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은사가 활용되어 만족할 수 있도록 도우며 구역에 배정할 때는 기질과 성향을 잘 파악하여 가장 무난하게 교제할 수 있는 그룹에 속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시간이 지나며 성도는 차차 교회에 적응하게 되고 섬김의 자리에 서게 된다.
하지만 '편안'이 기초가 되어 이루어진 헌신은 깊이를 요구하는 영적인 교제를 힘들어하게 되고, 난도가 있는 신앙문제에 잘 넘어지게 된다. 결국 '피할건 피하고' 적당한 선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한 영적 헌신의 자리를 찾아다니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헌신은 있지만 복음의 능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2. 소명에 근거한 헌신
소명에 근거한 헌신은 복음의 능력에 기초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어떤 만족이나 편안함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럽게 믿음안에서 주어지는 것을 부인할 필요도 없다.
소명에 근거한 헌신의 주된 내용은 '형제사랑'이다.
현대교회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 '사랑'이다. 교회내의 관계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 때가 많다. 상호간에 물어보지 않아야 할 것과 관심갖지 않아야 할 것을 분별하는 것이 '덕목'과도 같이 여겨진다. 기이한 일이다.
그러므로 소명에 근거한 헌신은 '불편'을 동반한다.
자신을 오픈하고 다른 사람의 삶의 테두리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문화가 조우하고 의도하지 않은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이러한 낯선 현장에서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진 사랑'을 토대로 서로 사랑하고 헌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여러 교회들이 '불편'한 사랑을 기피하고 '만족'을 주거나 누리려 한다. 만족은 적당한 헌신과 적당한 교제로 쉽게 얻을 수 있어 불편을 감내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떤 헌신인가?
#헌신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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