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주일예배 때 대표기도는 3분을 넘지 말라고 한다.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공적인 예배시간에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담당하는 대부분의 인도자들이 원고에 정성스럽게 기도문을 작성해온다.
어떤 분들은 한 장의 기도문을 준비하느라 잠도 제대로 청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런분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된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익숙해지기가 쉬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충에도 불구하고 정말 대부분 기도를 '잘(?)' 하신다. 전세계적으로 가방끈 평균이 길기로 정평이 나있는 한국사회이기 때문에 때로는 한 편의 기도문이 아닌 문학에 가까운 필력을 발휘하기도 하신다.
어쩌면 많은 분들이 기도를 '잘'하려고 한다. 대표기도 뿐만 아니라 일상의 기도의 자리에서도 청산유수같이 기도를 잘 하는 분들이 많다. 평소 기도의 훈련이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대한 정직한 대답이다. 노르웨이의 루터교 목사였던 할레스비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말로 표현하느냐 마느냐는 인간의 관심사일 뿐, 하나님께는 의미가 없다. 오직 무기력한 인간만이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다."
"세리가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으니라"(눅 18:13)
"어째서 교회는 내 연약함만 물고 늘어지는 겁니까? 강점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입니다."(미국의 역사학자 헨리 아담스의 소설 중)
무기력이 동력인 인간의 활동이 있을까. 내가 알기로는 없다. 무기력할 수는 있지만 무기력이 '동력'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기도의 신비다.
기도는 '무기력'이 동력이 될 수 있다. 무기력이 오히려 좋은 기도가 되게 한다.
물론 잘 준비된 기도가 잘못됐다거나 문제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성이 때로 하나님앞에 정직하게 서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주의깊에 생각해 보아야 한다.
뭐든지 잘해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대충은 없다. 기독교의 유래없는 부흥도 어쩌면 민족적 기질을 적절하게 활용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기력한 기도는 대충하는 기도가 아니다. 준비가 안된 기도도 아니다.
무기력한 기도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기대는 기도다. 그래서 가릴 것 가리고 뺄 것을 빼지 않는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다.
'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Homo orans 구하는 존재 (6) | 2025.08.17 |
|---|---|
| 지식없는 소원 (15) | 2025.08.11 |
| 자리를 비우라 (9) | 2025.07.26 |
| 아는 만큼 기도한다 (1) | 2025.07.22 |
| 앞자리도 좋지만, 삶으로 가까이 (1) | 2025.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