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눅 4:22)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묻는다.
“그래, 넌 뭘 해 먹고 사니?”
나의 미래는 아주 일찍부터 너무 위태로웠던지라 엄마는 나의 현재에 대해 결코 마음을 놓치 못했다...
엄마의 걱정은 그간의 전화와 편지, 방문, 책의 출간, 신문 기사들이나 베르나르 피보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일 따위가 가져다 준 ‘성공의 징표들’에 은밀히 저항했다...
“파리에 살 집은 있는 거냐?” (다니엘 페낙, 학교의 슬픔, pp. 13-15)
어릴 적 자녀를 향해 가졌던 부모의 근심은 왜 좀처럼 자취를 감추지 않는 걸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실마저 이미 자리잡은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자녀는 나이가 들어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는데.
지극한 부모의 사랑일까. 아니면 사람에게는 흔한 지독한 편견일까.
예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다.
“(회당에서) 예배의 모습을 보면, 먼저 토라 보관함에서 토라 두루마리를, 이어서 선지서 두루마리를 꺼냈다...성경은 서서 읽어야 했다. 이어서 진행된 주석적 설교는 앉아서 진행했다.”(제임스 에드워즈, 누가복음, p.206,)
매우 짧은 말씀이었지만 탄복할 정도였다.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눅 4:22)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저항하는 사회적 편견이 그순간 찾아들었다.
“이 사람이 (별다를바 없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자질에 대한 편견이었다. 편견이 사실을 무마해버렸다.
하지만 이는 심리적 안정을 취하려는 자기방어적 태도(편견)가 아니었다.
죄악된 본성에서 비롯된 ‘완고한’ 마음이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으려면, 그는 자신이 불의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은혜는 자신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깨닫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진다.”(다렐 보크, 복음서를 통해 본 예수, p.163.)
구원은 영적인 무지와 편견의 해체다.
말씀을 골라 듣는 시대다. 유튜브에 익숙해진 까닭이다.
하지만 듣는 분들은 편향적으로 청취하는 습관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좋은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은 어떠한 문제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기억하자. 예수께 직접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하는 자의 문제라는 ‘편견’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때로 자신의 영혼이 문제라는 '편견'도 균형있게 가져보자.
#나사렛#편견#완고한 마음#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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