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 4:15-16)

예수님 당시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은 정치적, 종교적 구심점이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께서 활동하시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였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전혀 예상 밖의 장소를 택하셨다.
바로 갈릴리 가버나움이다.
“가버나움은 북서쪽 호반의 중요 정착지였고, 거기에는 백부장과 세관도 있어서 지역 행정 중심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1세기 인구는 아마 1만 명 정도 되었을 텐데 이는 나사렛보다 상당히 큰 수였다.”(R. T. 프랜스, 마태복음, p.189.)
유대인들에게 한 지역의 가치는 거주민들의 정통성에 있었다.
하지만 갈릴리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혼재되어 살아가는 고유한 민족적 정서를 상실한 땅이었다.
갈릴리 가버나움은 지역 행정의 중심이었을지라도 그저 ‘멸시받는’ 땅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러한 행보는 오래전에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바였다.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1-2)
성경은 적절한 시기에 메시야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식별 가이드’를 미리 준비해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렇듯 당시 종교적 기득권층과 상반(相反)되는 행보를 보이셨다.
종교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은 교권(敎權)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세도(勢道)를 지니며 사람들 위에 군림했다.
여기에 형식적이고 맹목적인 교조(敎條)주의마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율법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이들은 후에 예수님을 핍박하는 데 앞장을 서며 자신들이 ‘가짜’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다.
종교가 ‘권력’을 갖게 되면 어떻게 변질되는지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옳다’하는 곳이 아닌,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신음하는 곳에 오신다.
‘빛’으로 오신 예수는 역설적으로 사망의 그늘진 곳을 찾아오셨다.
새벽의 여명(黎明)이다.
#갈릴리 #기득권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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