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시절에 ‘천국’이나 ‘지옥’을 직접(?) 보았다는 체험 간증이 사람들의 이목을 끈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도 ‘임사체험’ 등의 유사한 간증을 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보게 된다.
* 임사체험(臨死體驗) : 일시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체험
이러한 간증의 서두에 특별한 체험에 대한 언급은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부여한다.
간증을 하는 분은 체험을 본인이 하는 말의 권위에 대한 근거로 이해하고
듣는 사람들 역시 여느 때와 다르게 주의를 집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사실 임사체험의 사실 여부는 확인이나 검증이 어렵다.
그래서 진짜냐, 거짓이냐에 대한 논의보다
체험의 중요성 여부나 체험에 대한 공적인 태도에 대해 성경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임사체험의 중요성 여부에 대한 성경적인 유추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보자.
현실 속의 거지와 부자의 삶은 죽음 이후에 극명하게 뒤바뀌게 된다.
부자는 음부의 삶에 고통스러워하며 아브라함에게 (낙원에 있는) ‘나사로’를 자신의 집에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8)
가슴 아픈 대목이다.
그런데 이후 아브라함과 부자의 대화를 주목해 보자.
부자 –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30절)
아브라함 –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31절)
메시지성경으로 31절을 다시 보자.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메세지 성경)
"구원은 극적인 장면이나 표적이 아니라 믿음의 반응으로 얻어지는 것임을 상기시킨다."(제임스 에드워드, 누가복음, p.628.)
성경이 권고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다.
둘째는 체험에 대한 공적인 태도다.
고린도후서 12장이다. 바울의 신비한 체험이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니라)”(고후 12:2)
바울은 이 땅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체험을 서술한다. 하지만 6절 말씀을 보자.
“내가 자랑하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삼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거나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고후 12:6, 새번역)
바울은 듣는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과도한 반응을 오히려 걱정하고 경계했다.
임사체험이나 기타 여러 체험보다 더욱 신비한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본성을 취해서 이 땅에 오신 것(성육신)과
예수 안에서 성령의 교통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말씀에 주의를 집중하면 여러 현상에 대한 성경적 균형을 가질 수 있다.
이미 충분히 신비하다. 말씀에 집중하자.
#임사체험 #성경#성경의 충분성#신비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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