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요일 5:10)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표지다.
그런데 말씀 자체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말씀 안에 내재한 어떤 효력이 아니다.
성령의 내적 역사가 듣는 자의 심령에 변화를 가져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성경”
5항 -...그러나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 권위를 믿고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말씀으로, 또 말씀과 더불어(cum vervo) 증언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다(요일 2:20, 27; 요 16:13-14). cf) 말씀을 통해서 per verbum (through, by)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통해 구원에 이르려면 성령이 말씀을 인간의 마음에 효과적으로 적용하셔야만 한다. 그 이유는 성령의 내적 조명이 있어야만 성경의 자증성과 권위를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로버트 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p.6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0장 “효과적인 부르심”
1항 하나님은 생명을 주려고 예정하신 모든 사람들, 오직 그들만을 자신이 정한 적당한 때에 말씀과 성령으로(살후 2:13-14, 고후 3:3, 6)그들이 본래 처한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 효과적으로 부르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와 구원을 허락하기를 기뻐하셨다.
“효과적인 부르심은 말씀과 성령으로 이루어진다. 말씀은 ‘외적’ 수단이고, 사람들을 은혜의 나라로 이끌어 들이는 일은 항상 성령의 몫이다.”
한국교회는 말씀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주일 오전과 오후, 매일 새벽, 수요와 금요 기도회, 부흥사경회, 성경 공부, 공과 공부.
그리고 개인 취향의 유튜브 시청까지.
하지만 왜 이토록 ‘잡음’이 많을까.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 3:7)
말씀을 전혀 읽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말씀이 '생명'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죽음에서 살지만 '생명'으로 주소만 옮긴 '위장전입'이 아닌지 우려가 될 정도다.
"읽기만 하는 도능독(徒能讀)의 독서로는 책 속의 정보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삶이라면 글 한 줄 안 읽어도 천 권 독서가 부럽지 않다."(정민, 다산어록청상)
* 도능독(徒能讀) : 글의 뜻은 잘 모르고 무작정 읽기만 잘함
성령으로 읽자.
#도능독 #성령과 말씀 #말씀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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