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 12:9-10)

구원은 사랑 이야기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교회는 사랑을 받은 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 3:14)
사랑이 구원의 ‘증거’다.
어느 순간에 교회는 또 다른 ‘일터’가 됐다.
은사가 명분(名分)이었다.
하지만 피로도는 점점 높아져 가고 사람은 기피의 대상이 되어갔다.
사랑이 간과되고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바울 선생이 은사를 이야기한 후에 곧바로 ‘사랑’을 꺼내 드는 이유다.
“사랑은 순수해야 합니다.”(롬 12:9a, 현대인의 성경)
“Let love be without hypocrisy(위선)”(롬 12:9a, NASB)
“Let love be genuine”(롬 12:9a, NRSV)
두 얼굴의 사랑을 경계한다. 위선(僞善)적인 사랑이다.
“이 백성이 입바른 말을 거창하게 떠벌리지만, 그들의 마음은 딴 데 있다.”(사 29:13, 메시지 성경)
겉과 속이 다르다.
“위선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이 궁극적인 목표다.”(본 회퍼)
“지체의 일만 하면 저절로 사랑이 다 되는 줄로 알지 말고, 네가 한 교회 안에서 서로 형제라고 부르는 사람에 대하여 내가 구체적으로 진정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지 아니하고 그냥 껍데기만 포장하고 살아가는가를 마음 가운데 반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김홍전, 교회에 대하여 1, p.132.)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열정을 품고 봉사하는 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랑의 교제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경우도 흔한 광경이다.
거듭되는 교회 분열은 ‘사랑 없는 헌신’의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교회의 회복은 결국 ‘사랑의 회복’이다.
다시 사랑이다.
#사랑 #위선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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