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눅 2:49-50)

유월절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행렬에 ‘예수’가 없다는 것을 하루가 지나 알아챘다.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눅 2:44)
무관심이나 미숙함이 아니다. 가족만의 여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족과 아는 자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며 일반적으로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행렬의 앞쪽에 젊은이들과 남자는 뒤쪽에 위치한다.
아마 ‘어딘가에 섞여 있겠지’라고 안심하고 출발했던 것 같다.
신고할 부서도 없으니 백방으로 찾아다녔을 것이다. 12살 아이를 찾는데 사흘이 걸렸다.
화가 나기도 하고 너무나 반갑기도 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인류를 구원할 '예수'도 사춘기 시절의 일탈을 보여줬던걸까.
아니다.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눅 2:46-47)
놀랍게도 율법 교사들과 ‘신학대담’을 하고 있었다.
율법 교사가 누구인가. 율법에 정통한 박사들이다.
한 분야에 능통한 전문지식인들과 12살 소년이 아무런 막힘이 없이 토론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예수’의 대답에 놀라고 있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타고난 영재인가 아니면 신적인 능력인가. 아니다!!
“성경과 그리스도의 인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삶에 순전히 인간 차원의 발전과 성장이 있었다는 점을 알고 인정해야 한다.”(마크 존슨,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p.91.)
예수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죄성’이 없는 순전한 아이였다.
말씀을 배우거나 이해하는 일에 죄성에서 기인한 무지나 왜곡 또는 결핍이 없었을 것이다.
분발하자.
놀라운 광경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아이의 돌발행동을 꾸중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우 낯설고 단호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셨습니까?”(눅 2:49, 현대인의 성경)
“wist ye not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KJV)
12살 난 예수는 사명(使命)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설명했다.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는 자녀였지만 우선권은 항상 ‘하늘 아버지’께 있었다.
“예수는...어린 아이에게는 어린아이가 되어 그 나이의 아이를 성결하게 하셨고 그와 동시에 이들에게 경건과 의와 순종의 본이 되었다.”(이레니우스)
사명(使命)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의 잣대를 내려놓자.
#예수 #아버지의 집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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