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공관복음

마태복음 2장 22-23절

끄적이며 걷다 2026. 1. 14. 08:17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 2:22-23)

 

 

헤롯 대왕이 죽었다. 공포정치가 막을 내리는 듯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잔혹하고 폭군적인 성향을 닮은 아켈라오가 다시금 유대를 다스리게 되었다. 악의 대물림이다.

 

(아켈라오는 헤롯의 네 번째 아내인 말타케(Malthace)’와의 사이에서 태어나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에돔을 다스렸다.)

 

 

요셉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신과 무관하게 임신한 약혼녀를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 한다는 소식에 놀라 한밤중에 애굽으로 피신을 했다. 200Km가 넘는 고단한 여정이었다.

 

예정에 없던 타향살이가 헤롯의 죽음으로 끝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아켈라오가 등장했다.

 

요셉은 두려웠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헤아리시고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정을 인도하셨다.

 

그런데 기구해 보이는 인생 역정은 이미 말씀으로 예고(豫告)되었었다.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 2:23)

 

놀라지 말자. 하나님은 다 생각이 있으시다.

 

 

당시 갈릴리는 사람들이 무시하는 초라한 지역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요 7:41)

 

나사렛은 이런 갈릴리 사람에게조차 무시당하는 동네였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 1:46)

 

나사렛은 용이 날 수 없는 개천이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이력에 나사렛 출신이라는 한 줄을 적어주셨다.

 

누군가는 할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거절과 무시를 보장하는(?) 사회적 낙인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런 의도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외모도 주시지 않았다

 

인류구원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할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주어도 부족할 판국에 무슨 해괴한(?) 처사이신가.

 

나사렛 사람예수

 

()’, ()를 떼고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다.

 

 

 

#나사렛 사람 #거절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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