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창 12:18-19)

약속하신 땅은 ‘즉시’ 주어지지 않았다.
실상 아브람은 싸울 수 있는 사병을 소유한 상태였다.
“...집에서 길러낸 사병 삼백십팔 명을 소집하여...”(창 14:14, 공동번역)
하지만 아브람은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정착할 곳을 찾아 계속 이동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을 임의대로 이루려고 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심한 기근이 찾아왔다.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 12:10b)
거주할 곳은 마땅치 않았고 먹을 것마저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하나님의 약속과는 거리가 먼 삶의 정황이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묻기보다 주변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애굽에 가면 식량을 구할 수 있다!”
국제정세나 사회적 동향을 살피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믿음의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낯선 땅을 향하는 아브람에게 아내 사래의 빼어난 외모는 커다란 걱정거리였다.
자칫 누군가 자신을 해하고 아내를 빼앗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브람은 고심 끝에 한 가지 수를 떠올렸다.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창 12:13a, 새번역)
염려는 아브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잠식해버렸다.
“이방인들은 염려하는 중에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상상력과 싸우고 있다.”(키에르케고르, 이방인의 염려, p.234.)
염려는 자신을 보고, 믿음은 하나님을 본다.
아내를 빼앗길 위기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바로에게 임하였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말미암아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창 12:17)
애굽땅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왕보다 '강'하셨다.
아브람은 자신의 상상력과 싸운 것이었다. 믿음의 부재였다.
하나님께서는 약속 시간에 항상 늦게 오시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이 5분 '앞서' 염려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정각에 오신다.
믿음이다.
#가뭄 #바로 #사래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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